2월 하순. 매실 꽃눈이 여전히 움츠렸다. 그런 놈들 가지에 톱을 대자니 좀 미안하다. 덜렁 팔이 하나 떨어져 나가며
희, 푸릇하게 난 생채기가 얼마나 에일까? 날카로운 전지가위에 잘려나가는 손가락들은 또 얼마나 아플까? 한겨울 추위에 맨몸으로도
서 있기 힘든 판에 밭주인들의 서슬 퍼런 난도질, 날벼락에 말 못하는 그 가슴은 또 얼마나 미어질지......
이런 내 맘과는 달리 아내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식으로 우락부락 대거리에 여념 없다. 썰고, 째고, 비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진정 눈매나마 보드랍기를! 가히 돌격부대 하나는 됨직한 자세와 거친 숨결로 잠시 쉬는 법도 없이 저보다 큰
나무의 숨통을 쥐락펴락 한 나절.
그 사이 나도 별 다를 것 없었다. 나도 똑 같은 놈이다. 아니 그도 모자라 엔진 톱을 들고 소리도 요란하게 참나무
여럿을 뎅겅뎅겅 뭉텅뭉텅 도막냈으니 더한 놈이다. 아내는 ‘이런 내 맘과는 달리’ 나를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마라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릇 아내와 나는 들과 산에 나는 것들을 줍거나, 따서, 또는 캐서 먹는 것을 즐긴다. 채취 식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여북하면 우리 자급용 텃밭에는 거름도, 무엇도 주지 않는다. 죽을 동 살 동 겨우 살아만 있는 상추며 배추, 기타 쌈 채소,
토마토, 참외, 수박을 거두어 먹는 쾌감은 어디에 비할 바 없다.(이걸 사디즘이라 제발 부르지 말기 바란다. 전문용어로
자연농법이라고 한다.) 지난 해 여름 먹다 냉장고에 처박아 둔 수박이 아직도 껍질만 쭈그러들었을 뿐 그 속살은 여전히 싱싱하다면
누가 믿을까, 우리 부부 말고.
우리 부부의 운명이 얄궂어서인지 이런 채취로는 농가경영이 어렵다. 산 입에 거미줄 치기에 딱 알맞다. 거짓말 보태서
죽도록 농사를 지어도 농가경제는 범 농민의 차원에서 오뉴월 가뭄을 넘지 못하는 형국일진대, 저기 말없이 겨울을 지키고 선 뿌리
깊은 놈들을 고문, 닦달하지 않고서는 여름 수확의 풍요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톱에, 가위에, 낫까지, 필요하다면 도끼마저
들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사연이 그러하니 ‘이런 내 맘과는 달리’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다. 덤바우, 족쇄 찬 죄수 같은 나무들아! 아직
멀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비겁하게 엎드려 기회만 엿보고 있는 풀 족속들도 덩달아 들어라. 오늘 예초기 고치려고
가지고 나왔다. 얼마 안 남았다. 고개만 내밀어 봐라.
기타 등등.
맘이 급해 막상 밭에 들었는데..
거긴 아직 한겨울 그대로 였다. 시내에서 지내기엔 너무 늦은듯 해서 조급 했는데...
찬바람을 거스르며 매실 나무 전지도 하고, 늦은 듯 했던 표고버섯목 참나무도 자르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울 남편 냇가 뒤지기도 도와주고????
한마리 보였던 그놈은 기어이 돌려 보냈다..
아직도 봄이 오지 않은 그곳..겨울이면 언제나 빨리 봄이 오길 기다려지는 거기..
생각만으로도 그리워 지는 덤바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