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교육을 함께 받은 이들이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두 달에 한 번 만난다. 만나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술마시는 일이다. 안주 삼아 농사짓는 경험담이 오간다. 그저 되는대로, 두서없이, 남의 이해에는 아랑곳없는, 제 멋대로 떠드는 말들이 쥐가 한 달은 쏠아놓은 곳간처럼 좌중이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그런데 이게 진국이다. 귀농의 소중한 배움은 모조리 술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는 이도 있다. 정색하고 물으면 눈만 멀뚱대던 사람들이 술만 들어가면, 그리고 슬쩍 추어주거나 깎아내리기라도 하면 알짜 농법과 노하우가 쏟아지는 것이다.
2월 27일, 1기 교육을 받은 이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은 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먼저 모인 사람끼리 일 배를 나누고 나서 요즘 뭐 하는가 서로 물으며 말문을 연다. 이 때, 요즘의 현안인 가지치기가 화제로 떠오른다. 누군가 가을 가지치기가 더 낫다는 말을 하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경험에 비춘 가지치기 요령들이 쏟아진다. 한참 성장세에 있는 가지를 자르는 것은 도장지의 발생을 부추긴다며 겨울 전지가 낫다는 이들도 있다. 절기로 처서 무렵의 전지는 도장지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도 있다. 가을 전지는 굵은 가지 중심으로, 겨울 전지는 도장지 위주로 해야 한다는 절충론도 있다. 언제 하든 잘 하면 된다는 낭만파도 있다. 물론 결론은 나지 않는다. 진지한 분석 전에 화제가 다른 것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술이 거나해지면 저마다 할 말들이 많아 공식 안건(?)은 개별 면담을 거쳐 겨우 전달된다. 기술센터에서 주선하는 귀농 연구모임에 적극 참여하여 전 기수를 아우르는 귀농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고, 그러자고 술잔에 대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윽고 쌈 채소를 새로 시작하는 이의 비닐하우스 공사로 이야기가 옮아간다. 수막시설(하우스 비닐에 물을 흘려보내 내부의 온도를 유지하는 장치)을 하자면 사전에 지하수 검사를 꼭 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철분이 많을 경우 비닐이 온통 붉게 변해 못 쓰게 된다는 이야기다.
뭐니 뭐니 해도 취중이라도 귀가 곤두서는 소재는 작목이다. 특히 새 작목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이와 그걸 듣는 이들은 농사꾼 특유의 호기심과 기대를 발동시킨다. 그 주인공은 파프리카다. 부가가치가 꽤 높은 작물이지만, 시설이 필요하다. 상품성 있는 크기로 키워내려면 거의 양액재배 수준의 영양 공급이 필요하기도 하다. 몸집을 크게 키워야 열매도 크다. 그러나 그 두 가지의 상관관계에 균형점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교과서적인 처방이 아니라 몸에 밴 기술력에 의해 가장 경제적인 재배와 높은 수확에 이르는 것이다. 더구나 파프리카는 약도 없는 바이러스에 극히 취약하다. 등등. 그런 논란의 끝에 이르는 결론은 간단하다. 해봐야 안다. 그 뿐이다. 모든 위험부담은 새 작물을 시도하는 이의 몫임을 누구나 안다. 그래서 술 한 잔이 추가되고 건배를 외친다.
그러나 소동에 가까운 갑론을박의 핵심은 2차다. 술자리를 이어가자는 것도 그렇지만 어디 가서 무얼 마실까도 사람 수 대로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게 이른 봄의 밤이 깊어간다.
그리운 사람들,그리운 시간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