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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누리를 꿈꾸는 은빛 귀촌

농업인과의 대화 조회 수 13784 추천 수 0 2013.03.09 10:14:30
김천 직지사 들어가는 어귀 잔잔히 흐르는 개울과 나란히 들어가다 보면 나지막한 마을이 이어진다. 딱히  고풍스럽다할 수는 없으나 우격다짐으로 지어놓은 건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아담한 집들을 만나게 된다. 덜하지도 과하지도, 그렇다고 딱 그 만큼이라고도 부를 수도 없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오랜 세월이 그대로 묻어 툭툭한 빛을 내는 가지런한 골목 끝에 <쪽빛누리 공방>이 있다. 대나무 숲이 울창하게 시립한 산기슭 밑 고즈넉한 공방에서 김정희선생 부부를 만났다.

규방공예는 전통적으로 여인들이 이룩한 실용예술이다. 침선(바느질)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더해 우아한 간결미를 표현한 것으로 옷을 꿰매 입는 역사만큼이나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규방공예가 김정희 선생에게 작품 활동에 대해 묻자, “계획은 없어요. 그저 시작하면 골몰해서 완성하는 거죠. 그러고 나면 공허해지죠. 그럼 다시 시작하는 거죠,” 맹탕 같은 대답이지만, 그게 문학이든 미술이든 또 다른 예술이든 스스로를 규정해놓고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다.

이근우 : 바느질을 줄곧 해오셨습니까?

김정희 : 아뇨. 제가 김천 오기 전에는 내내 한국무용을 했어요. 이제 와서 보면 제가 우리 멋에 유난히 이끌리는 모양이에요.

김선생은 퇴직한 남편이 자신의 고향인 김천으로 귀촌하자는 제안을 했을 때, 무용을 하게 되지 못 하는 것 때문에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김정희 : 김천에도 뭐, 우리 무용할 마당이 있으려니 해서 남편 따라 내려왔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여건이 불충분해서 좀 실망했죠. 다행히 김천문화원에서 전통문화를 보급하고 있어 참여하게 되었죠.

김선생은 현재 문화원의 ‘우리소리봉사단’에서 무용보다는 주로 경기민요를 부르며 활동하고 있다. 타고난 우리 문화 지킴이인 셈이다.

이근우 : 김천시 천연염색 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계시잖습니까?

김정희 : 어쩌다 보니 하게 됐는데요. 막상 귀촌을 하고보니 소일거리 말고는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도를 배울 겸 즐겼어요. 그런데 나한테는 잘 맞지 않아요. 너무 정적이고, 무언가 이루어가는 맛이 없어요. 점점 더 좋은 차와 훌륭한 다기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도 그렇고...

이근우 : 제가 뵙기에도 무척 성취동기가 강하신 성품인 것 같습니다. 염색은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김정희 : 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생활개선회에 한 부분으로 염색연구회가 속해 있는데요. 2003년부터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천연염색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염색기법이다. 합성염료의 개발은 최근의 일이며 환경과 자연, 건강에 관심이 커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재현성이 부족한 단점이 있어 꾸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김천시의 염색모임이 연구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선생은 특히 쪽 염색에 관심이 많아 직접 재배하여 염료를 만들고 있다.

이근우 : 워낙 전통문화에 관심이 커 규방공예도 하시게 된 거죠?

김정희 : 사실은 사연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평생 바느질을 하셨어요. 생업이기도 했지만, 워낙 솜씨가 좋으셨죠. 아시다시피 바느질은 무척 고된 일이에요. 그래서 어머니는 가르치시지도 않았고, 하지도 못하게 하셨어요. 그런 제가 60이 넘어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근우 : 어머니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으셨나 봅니다. 짧은 기간인데도 강의까지 하시지 않습니까? 바느질 하시면서 주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김정희 : 아무 생각 없어요.(웃음) 뜻밖의 어우러짐이라는 표현이 맞겠어요. 소재는 있지만, 주제는 미리 준비하지 않는 거죠. 조각보를 할 때면 마치 쓰레기 더미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느낌이에요. 조각조각 이어 붙인 것들이 뜻밖의 색의 배열을 보여줄 때 깜짝 놀랍니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조각보 안에 세상사 모든 것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거죠.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벽에 걸린 조각보를 가리키며) 저게 언제 끝날지 나도 궁금해요. 어울린다 싶은 천 조각이 생기면 그 때마다 조금씩 기우고 있어요.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게 보기 좋기도 하고요.



이근우 : (김선생의 남편인)최선생께서는 김선생이 바느질 할 때 심심하지 않으신가요?

김정희 : 이이도 바빠요. 텃밭 돌봐야지, 집안일 해야지, 수영에 배드민턴에 나보다 더 바빠요.

최선생 : 허허. 매일 바느질하니까 집안에 실 보푸라기가 말도 못 해요. 뽀얗죠. 그거 치우기도 하고, 다른 일도 많죠.

최선생이 퇴직한 후 두 부부는 귀촌하면서 아내가 평생 뒷바라지 했으니까 여생은 남편이 집안일을 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실제로 인터뷰 중에 내는 음식들을 모두 최선생이 장만했다. 노년을 귀촌하여 보내려는 이들이라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귀촌은 단순한 공간이동이 아닌 것이다.     

이근우 :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시는데요.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김정희 : 글쎄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까... 명색일 뿐이죠. 나는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우리 지역사회가 문화적 풍토나 교류 면에서 취약한 점이 많아 아쉽습니다.

이근우 : 대부분의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할 텐데요. 개인적으로 그런 부족함은 어떤 식으로 메우십니까?

김정희 : 쉬운 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죠. 다만 시간을 못 박을 수는 없지만 개인전 등의 형식을 통해 작품들을 정리해볼까 해요. 허투루 보관하고 쉽게 줘버리지 않고 잘 모아서 찬찬히 훑어보고 그 맥락을 음미해볼 기회를 가질까 합니다.

김선생은 ‘이미 만난 인연도 과하다.’라고 노년의 삶에 놓인 노정을 표현했다. 자신의 작품에서 ‘뜻밖의 어우러짐’이 주는 낯선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다소곳이 예술의 길을 걷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군인으로서 나라의 버팀목이었던 최선생은 이제 아내를 보위하는 장군으로 거듭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김선생의 바느질 한 땀, 한 땀이 그들 부부만의 실버타운을 영위해 가는 징검다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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