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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야, 내년에 보자

농사일보 조회 수 28724 추천 수 0 2013.07.02 09:42:16
자두야, 내년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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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의욕도, 기운도 없다.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게 된다.” 거의 평생 농사만 지어온, 과수농사에 거의 달인의 경지에 오른 어르신 농민의 말씀이다. 흉년을 당한 어느 농민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그 말씀이 더욱 가슴 저리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매년 수확하는 과실은 결코 이전의 것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밭에 바치는 모든 일은 바둑 두는 것과 비슷한 포석이자 전략일 뿐 아니라 모험이고 도전이기 때문이다. 주렁주렁 달리는 과일을 보며 지난 한 해의 연구와 노력의 결실을 마음에 새길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야말로 가장 큰 손실이기에 한숨이 더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과 서너 시간의 눈과 영하의 기온 탓에 과실을 거짓말 안 보태고 한 알도 수확하지 못한다는 것, 당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수확시기가 코앞인데 나뭇잎만 무성한 과수들을 보자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2
  지난해부터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화두는 ‘친자연’ 비료와 농약이다. 진작부터 해오던 일이기는 했어도 활용보다는 실용성에, 적용에서 효용성 강화로 진전시키려고 애썼다. 그럴 듯하게 표현하자면, 밭과 주변의 산과 들을 동일체로 인식하여 퇴비와 비료 모두를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에서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모든 병충해 방제는 때를 달리하며 자라는 풀, 독초를 사용했다. 올 해 들어 그 성과를 체감하고 있다. 이른 감은 있으나 우리 부부 모두 자신감을 얻고 있어 기분이 좋다.

 우리 부부에게 관건은 이런 재배방식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키운 작물이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가이다. 우리 농법의 진정성과 거기서 산출되는 작물의 우수성을 짐작만 가지고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이들이 많다. 무척 고마운 일이고, 그들과 농작물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무한한 기쁨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목표는 유기농, 친자연 재배이면서도 그 외양과 크기에서는 일반 농작물에 근접하는 농작물 생산이다. 물론 작물 고유의 특성이 와해되는 수준에까지 이르는 비만, 착색은 배재한다.

 그것이 어떤 유기농이고 친자연재배이든 생산성이 결여된 농작물 재배방식은 무용하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소신인 것이다.

 
풀액비와 미생물 배양액

독초농약(개여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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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부 농법의 성과는 당연히 작물의 재배과정과 결과물로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우리는 가장 평범한 밭작물인 배추와 무, 양상추, 파, 양파 등을 비교적 많이 심어 재배했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우리 농법의 적용에 기술적 오류가 있었고, 특정 작물 특유의 재배방법에 무지한 탓에 관리가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지난해의 경험을 토대로 올 초봄에는 무를  2천포기 이상 집중 재배하여 얼마 전부터 수확하고 있는데, 지역농협 하나로 마트에 전량 납품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 보기에 그 외모에서 일반 재배 무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내심 맛과 품질은 그들보다 한수 위라고 자부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다. 화학 비료 한 톨, 농약 한 방울 쓰지 않고 기른 무들이고, 자재비가 거의 들지 않은 알짜다.

 흥분 잘 하는 나는 아내에게 외친다. 고추에 이어, 마늘, 이제는 무에 이르기까지 아니, 곧 심게 될 배추2천포기까지 누구 말 대로 초저비용 농산물의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품질이야 이를 것 없고, 외양까지 경쟁력을 갖추는 원년이 바로 올해라고.

4
 아내는 그런다. 자두 한 알 수확 못 할 판에 뭐가 좋다고 너스레냐고. 나는 속으로 그런다. 그 탓에 올 한해가 좀 버거울지는 몰라도, 날씨에 대고 눈 흘겨봐야 내 눈만 아픈 것 아니냐고. 또 그런다. 누구는 속이 안 쓰리겠냐. 그렇다고 인상 쓰면 나아질 것 있냐고. 자두나무 곁을 지나다 속이 서늘해지고, 어깨 한쪽이 무람없이 이운다 해도 어쩔 것이냐고. 그래도 이룬 것이 많고, 그걸 바탕으로 우리 특유의 생산방식이 자리를 잡는 한 해가 될 터인데 무에 그리 대순가, 농사 한두 해 짓다 말건가 말이다. 잘 때마다 모로 누워 속으로 또 왼다. 우리 방식을 나보다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 전투력이 고맙다고, 그 덕에 너스레가 느는 것 아니냐고.

5
 연락을 따로 하지 않아도 붙박이 연례행사처럼 때에 이르면 우리 자두를 주문해주는 이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미리 연락을 넣을까 하다가 민망하여 이런저런 잡념에 미루던 사이 자두 보내라는 전화가 빗발친다. 참으로 죄송하다. 무엇보다 자두를 거울삼아 서로를 비출 기회를 놓치는 것이 한없이 안타깝고, 억울하다.

 “내년에는 두 해 묵어 더 탐스런 자두로 찾아뵙겠습니다.”

6
 자두야, 내년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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