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해거름, 막걸리를 정확히 석 잔째 기울이는데 소쩍새가 운다. 올해의 첫울음이다. 여씨춘추의
“五時見生而樹生,見死而穫死.”(계절마다 살아나는 것을 보아 살릴 것을 심고, 죽는 것을 보며 죽은 것을 거둔다.)가 떠오른다.
유식해서가 아니라 농사꾼이면 꼭 기억해두어야 할 경구다. 농작물은 ‘유사 생명체’다. 자연에서 자라는 산천초목과 비슷하지만,
사람에 길들여져 결코 자생할 수 없으므로 그렇다. 자연의 본능적인 운행을 관찰하여 흉내 내며 농사를 짓는 것이 현명한 방법임은
고대에도 이미 알았던 소중한 지혜다. 더구나 이상기후가 일상화된 오늘날이라면 산과 들에 깃든 생명들의 기척 하나하나가 소중할
밖에...
소쩍새의 울음은 ‘무어든 심어도 좋다.’라는 신호다. 농사꾼의 진정한 봄이라는 뜻이다. 나처럼 진작
밭을 갈아두지 않았다면 게으른 농사꾼임을 깨우치는 알람이기도 하다. 게으름이 몸에 밴 사람들은 바쁠 때 가장 바쁜 사람들보다 더
바쁜 법이다. 일의 경중과 순서를 꿰지 못하기에 허둥지둥 바쁘고, 되는 일 없이 수고만 더한다. 그렇게 보낸 농사가 7년이고
이제 8년을 메워가고 있어 마음이 어수선하지만, 자명한 일들을 벌여야 하는 4월과 다가올 5월이 차라리 반갑다. 그리고 못내
고맙다.
오늘 저녁에도 이어 소쩍새가 울겠으나, 바다로 스러져 피우지 못한 수백 꽃들 생각에 가슴이 더 에일 것 같아 며칠 쉬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