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올해 상추재배를 통해 농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숨이 턱에 찬 농사였다. 고되기로 말하면 막노동이었고, 바쁘기로는 공장의 생산라인이었다. 달리기로 치면 왕복달리기였겠다.
꼼꼼하면서 동시에 게으른 나로서는 최악의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일의 과정 자체가 내 천성을 질리게 만들었다. 아내의 말을 빌면, ‘안 하면 어떡할 건데?’라는 체념과 좌절 속에서 더운 여름과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일했다.
뭐, 대단한 것을 해냈다고 치레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농사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그만한 노력과 고통이 대가로 붙는다는 걸 새삼 느꼈다는 뜻이다. 더불어, 못 할 일 또한 아니었다는 자그마한 성취감도 있다. 우리 부부가 하는 농사의 한 변경을 개척했다는 것 또한 의미 있다.
올 유월 상추농사와 함께 페이스북을 시작했었다. 불과 삼 개월이 채 안 되는 동안 많은 기쁨을 누렸다. 많은 이들이 녹여내는 사소한 진정성이 시냇물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공간이었다. 덕분에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농사에 비추어 결과적으로 쓸데없이 시간을 소모했고, 이런저런 생각에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물론 내 탓이다. 말하자면 생산성을 스스로 정립하지 못해 즐거움을 부담스러운 일거리로 만든 것이다. 자칫 강박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내가 종교인의 단순성에 버금가는 농사꾼으로서의 덕목을 갖추지는 못한다 해도, 강박에 사로잡혀 하릴없이 배회나 하는 한심한 작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그만 두었다.
사연이랄 것도 없는 이야기다. 다만, 그게 소양이든 능력이든, 취향이거나 적성이더라도 내가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체질적으로 보수적인 모양이다. 그걸 존중해야겠다. ‘사소한 진정성이 시냇물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공간’이 어느 곳에 특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대로 생활하는 방식에 그런, 마르지 않는 개울이 하나 생기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