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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덕에 나는 패배주의를 극복했다

 나는 진작부터 지방선거에 투표할 생각이 없었다. 사는 곳이 워낙 보수색이 강하고 한나라당 공천자와 낙천자로 이루어진 후보들 사이의 다툼이라 정책 대결은 애초부터 없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여실히 드러나는 자두나무의 냉해 피해로 인해 마음도 고달팠다. 내 코가 석자인데 한가하게 투표는 무슨 하는 심정이었다. 

 선거일이 다가오며 돌아가는 판세도 여당의 압승이 예상되자 나는

 “난 투표 안 할래. 밭에 할 일도 태산이잖아.”

라고 선언(?)했다. 아내는 별 말이 없었다. 대신 집으로 배달된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 나물에 그 밥 아니냐는 내 비웃음에 아내는 역시 그렇다고 대답했다.
 
 “투표 날, 적과만 해도 다 마치겠네.”

 솎아낼 것도 별로 없는 자두나무 타령을 하면서도 나는 요지부동에 철옹성인 보수, 그렇게 부르기가 오히려 민망한 수구 기득권 세력과 그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오만방자한 집권세력과 저열하기 짝이 없는 정치를 떠올렸다.

 ‘그럼. 투표는 시간 낭비일 뿐이야.’

 유월로 접어드는 덤바우의 밭과 주변 산들은 그 신록이 보석보다도 아름답다. 하나로 푸르지 않은 온갖 푸름의 깊이는 바라볼수록 매혹적이다. 그런 자연에 묻어 사는 삶에 정치는, 선거는, 고작 버려진 쓰레기 조각에 불과하다. 휴지통에 처넣고 잊어버리면 그 뿐이다. 정말 그렇다!

 그러는 사이 선거 전날이 되었고, 아내가 간단히 몇 마디 했다. 현 시장은 귀농인인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해당 정책에 성실하지 않고, 또 투표 중에는 정당을 찍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선거라 해도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이 너무나 뻔한, 교과서적이어서 진부하기까지 한 아내의 말이 내 마음을 싹 바꾸어버렸다. 그랬다. 주권은 그냥 주권일 뿐이다. 동기나 결과와는 전혀 무관한, 절대 순수의 의사표명일 뿐이다. 방해도 없고, 왜곡도 없는 화장실보다도 안전한 나만의 절대 공간이다. 자주 오지도 않는 그 대단한 축복을 거부하려고 했다니!
       
 막상 선거 당일에는 부부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 알다시피 부부의 ‘사소한’ 다툼보다 더 큰 전쟁은 이 세상에 없다. 아내는 북쪽 끝 밭으로 나는 남쪽 끝 밭으로 가서 화풀이 삼아 일을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 오후 네 시가 다 되어갔다. 아내는 성격상 이 상황에서 투표하러가자고 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도 한 풀 꺾고 다가갈 생각도 없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이러다가는 훗날 나 때문에 투표 못 했다는 원망 듣겠다 싶어 아내에게로 갔다.

 “네 시 넘었어.”
 “…….”
 “가자.”

 그러고는 혼자 돌아갔다. ‘면피’는 한 셈이니까 투표는 안 하더라도 원망을 덜 받겠다 싶었다. 아내와의 전투 중에 투표는 지극히 사소한 일일 뿐이다.

 그런데 잠시 후 아내는 농막으로 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나도 그랬다. 집에 들렀다 투표장에 가는 내내 우리는 거의 말이 없었다. 그리고 투표를 마쳤다.

 “저기 한 번 가자고 했잖아.”

 나는 투표장이었던 학교의 길 건너에 있는 간판도 없는 허름한 식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거기서 돼지 불고기를 안주로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마셨다. 그건 화해이자 투표를 무사히 마친 기념 축배였다. TV에서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짐이 좋았다. 결국 야당의 압승! 우리 부부가 참여하지 않았으면 얻지 못했을 대승이었다. 술보다 기분에 취한 밤이었다. 

嶺南 프리맨

2010.06.04 14:59:07
*.103.89.183

오~~

그집도 전투를 하며 사는군요.^^

생전 두부부의 금술이 넘~좋아 전쟁은 안한줄 알았는데..ㅎㅎ

 

다..미운정 고운정은

싸워가며 정이 드는거랍니다.

화해 ..좋찮아요.

 

언제나

그맑은물만 흐르지 않죠^^ 흙탕물도 흐르는법이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맑은물이 흐르게 되지요.. 

 

애들은 싸워가며 성숙해 진다 잖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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