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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5일

발가벗은 자두 앞에서 훌훌

 자두 꼭지가 붉어지는가 싶더니 조생종 자두(대석) 몸통이 모조리 누런 황금빛으로 물들어버렸다. 하마 덮쳐오는 눈사태라도 떠안듯 따고 또 딸 수밖에 없다. 때가 또 장마철인지라 찌뿌듯한 하늘 눈치를 살피다 보면 저절로 손과 발이 빨라진다. 직거래를 하자면, 순차적으로 익어주어야 주문과 배송이 순조롭겠으나 그걸 따질 계제가 아니다. 행여 공판장에 자두가 쏟아져 나올까, 그래서 말 그대로 도매금이 될까 하는 걱정도 나중 일이다. 우선은 따야 한다. 산수 갑산을 가더라도 따놓고 보아야 한다. 







 유난히 길었던, 그리고 추웠던 겨울 탓에 착과가 부실했고, 유례없이 한꺼번에 숙성이 된 자두다. 말쑥하게 성숙한 자태가 참으로 대견하고 다행스럽다. 냉해를 정면으로 받은 나무는 불임의 침묵을 푸른 잎사귀로 가리고 섰고, 날씨의 시달림에 골병이 든 나무는 콩알만 한 자두를 매달고도 힘에 겨워 이파리를 활짝 열지 못한다. 그 놈들이 보기에 딱하다면, 거짓일 게다.

 ‘저것들만 성했어도 몇 십 박스는 더했을 것을…….’        
         
 그렇다 해도 중반전에 썩 들어선 자두수확기를 맞아 몇 가지 뿌듯한 성취가 있다. 우선 소나 닭의 똥, 축분을 하나도 쓰지 않고서도 나무의 성장과 결실의 크기에서 손색이 없었다는 것이다. 축분은 농민에게 질소 공급원으로서 무척 소중한 퇴비 역할을 한다. 산이와 들이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질소가 충분치 않으면 나무든 채소든 결코 잘 자랄 수 없다. 다만, 요즘 축분의 질에 문제가 있다. 소와 닭이 주로 먹는 사료의 문제이며,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이 문제다. 문제가 있을 법한 것을 체내에 축적한 짐승이 소화하고 배출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들이 부부의 생각이다.(특히 유기농을 하는 농민들은 이 점에 대해 무척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질소 공급을 화학비료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산이와 들이는 콩, 팥, 메밀, 깨 등 농작물 부산물과 야산에 널린 잡초 등으로 퇴비를 만들어 썼다. 그리고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미생물 효소를 첨가하였다. 이렇게 만든 이른바 산야초 퇴비는 물론 질소 함유가 축분보다는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 나무가 필요로 하는 질소의 최대량을 주먹구구로(^^) 계량하여 일반 농민이 투여하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양을 시비하였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들이의 불안이 심했다. 자칫하면 일 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지난해 화학농약 살포를 무작정 자제하다가 벌레 피해로 수확의 40%를 날린 악몽도 있고 해서 실제로 악몽을 꾸는 일도 많았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단지 몇 그루만 기왕에 불안했던 수세로 질소가 더 필요했다는 것은 알게 되어 개별 나무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둘째로는 화학농약의 퇴출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석회보르도 액과 석회유황합제가 큰 역할을 했다. 각각 가을과 겨울에 치는 이 천연 약제들은 휴면기에 든 나무들에서 월동하는 벌레와 균을 방제하는데, 빼먹지 않고 살포한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그리고 생육기간 동안은 주로 은행잎과 자리공, 목초액 등으로 만든 천연농약을 살포하였다. 사실 그 효과는 여전히 자신할 수 없다. 다만, 올해부터 사용한 제독유황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역시 검증 가능한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무튼 올해에는 벌레와 균에 의한 피해가 예년에 비해 적었다. 미생물 효소를 비료로 꾸준히 준 것도 기여한 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셋째, 화학비료의 사용을 10% 미만으로 하고서도 생육과 결실에 지장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사실 이 점은 지난해에도 동일하였다. 올해도 미생물 효소와 제조한 동물성 아미노산, 천연식초, 칼슘제제 등을 주요 비료로 사용한 것이다. 조금 다르다면, 미량 원소의 공급을 위해 광물성의 천연비료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바이오올리빈이라는 이 비료는 과실을 단단하게 하고,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산이의 가지치기가 매우 유효적절하였다는 것이다. 멋대로 가지치기를 할 경우 나무를 망치므로 전문가에게 의뢰하여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삼 년여에 걸친 연구를 통해 일정한 틀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이웃한 면에서 자두농사를 하시는 송득수선생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물론 많다. 공판장에 가서 남이 지어 놓은 결실을 보면 저절로 드는 생각이다. 시행착오가 거의 끝났다고도 장담할 수 없고, 착각과 오해가 빚은 행운이 성과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초보운전자의 자신감이 이미 얻어놓은 보람을 한 순간에 까먹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공판장의 경매사가 마이크로 내뱉는 주문 같은 입찰독려 소리에 귀가 울리고, 머리가 어지럽다. 줄줄이 늘어선 박스에 발가벗은 채 담겨있는 자두를 보다가 문득 훌훌 지난 한 해를 벗어던지고 싶다. 산이가 열심히 선별해 내놓은 자두를 주무르고, 기껏 가지런히 해 놓은 것을 뒤섞어 버리는가하면, 심지어는 한 입 베어 물고는 바닥에 휙 던져버리기까지 하는 중개인들. 그것이 그들의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잠시 착잡하고 서글퍼진다.









 꼭 그건 아니겠으나, 결단코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그런 7월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다.

박철호

2010.07.18 09:55:30
*.154.221.122

바닥에 널부러진 차두가 참 처량하고 서글픕니다. 생명에 대한 예의는 고사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사라져버린듯 합니다.

들이

2010.07.18 18:06:35
*.211.220.189

제 처지에서 겪게 되는 사소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해관계를 달리하며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살풍경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말씀하신 대로 '예의'가 관계와 소통의 기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소 썰렁한 홈피에 소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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