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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8일

폭염과 함께 나타난 포식자

 여름이야 원래 더운 계절이다.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장마까지 겹쳐 습도마저 팔십 퍼센트를 웃도는, 사우나에 풍덩 빠진 듯 뜨거움과 답답함에 허덕인다 해도 여름이니 별 수 없다. 푸릇한 새벽에 자두를 따겠다고 나서면, 금세 모자 틈을 비집고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등이 젖고, 바지가 척척 들러붙는다. 이제는 더 키워 장차 초가을에 베어 넘기겠다는 풀들이 허리춤까지 자라 움직임을 거추장스럽게 만든다. 그래도 여름이 이 만큼 무더워 자두가 잘 영글었다. 어느 해보다 맛이 좋다. 냉해에 잃고, 나방의 애벌레에 침 맞고, 새들의 부리에 찍혀 나갔어도 성한 것들은 의연히 누렇게, 그리고 발갛게 성숙한 빛깔을 띠었다. 속도 알차서 묵직하고, 자양분이 균형 잡혀 탱글탱글 탄력도 좋다.

 “흐흐, 땀이 자꾸 떨어지네. 자두에서 짠 맛 나겠다.”

 들이의 주먹구구식 유기농에 올해 자두작황도 상처뿐인 영광이다. 중생종(포모사) 자두는 심식나방과 복숭아 순나방 애벌레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지난해보다 심하다. 어디선가 본 통계대로 무방제일 경우 그 피해는 평균치, 50%에 가깝다. 화학농약을 쳐가면서도 막기 어렵다는 이들 나방의 공세이고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자두 식초는 많이 담겠네.”

 그렇다. 애벌레에게 똥침 맞은 놈들은 상처를 도려내고 식초를 담근다. 결벽주의에 완벽주의로 무장한 아내, 산이의 이 태평스런 말이 들이에게는 힘이 되고 시원한 바람이 된다. 해가 갈수록 여유로워지는 산이가 너무나 고맙다. 태평하다 못해 늘어져 사는 들이야 평생 이골 나지 못할 농사꾼이지만, 산이의 치밀한 도시적 노동습관도 어느 정도 무디어져야만 한다. 네 해를 겪으며 그리 되고 있다. 이미 어엿한 농사꾼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모든 일에 앞서 자세가 중요하다면, 산이는 머잖아 당당하게 우뚝 설 것이다. 아내라서가 아니라 동료로서 그렇게 느낀다.

 “어머, 멧돼지 왔다 갔네!”

 비교적 낮게 번 자두가지가 하나 둥치에서 뚝 부러져 있고, 가지에는 흙 발자국이 찍혀있다. 더위가 싹 가시는 긴장감이 밀려들었다. 제 아무리 대식가라 해도 그저 먹어치우는 자두는 아깝지 않다. 문제는 그 발굽 다리로 가지를 끌어내려 분질러 버리는 무도한 행위다. 실한 가지를 하나 잘 기르는 데에는 삼 년이 걸린다. 수형과 수세를 고려하여 공들여 다듬어 살린 가지를 이처럼 부러뜨리고 나면, 거기에 달릴 과실도 과실이지만 그 가지에서 새로 날 잔 가지마저 잃게 되는 것이어서 손해가 막심하다. 보나마나 올 가을 산이는 그 나무 앞에서 어찌해야 할 지 깊은 고민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그 뿐 아니다. 자두나무 사이에는 참깨도 자라고, 고추도 자란다. 육중한 멧돼지에게 한 번 짓밟히면 그것으로 끝이다. 행여 마침 내리는 비를 타고 밭에서 진흙 목욕이라도 한다면 삽으로 메우기 힘든 커다란 웅덩이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한 순간 이런 우려가 공포로 바뀌었다. 새벽 다섯 시경, 그리고 오후 서너 시경, 그리고 온 밤 내내 멧돼지가 농막 주변을 서성거렸다. 사오 미터 되는 사람 바로 앞까지 나타났다.

 “야, 왁, 워이!”

 들이가 이렇게 외치자

 “후, 훅, 프륵, 클클.”

 이렇게 대꾸 하며 발까지 구른다. 물론 덤벼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 땅에 침입한 짐승을 경계하고 쫒듯 행동한다. 쇠막대를 두드려 소음을 내자 도망가기는커녕 저희들끼리 신호하며 여전히 밭가를 배회했다. 나중에 작은 처남과 옆 산에 올라보니 시커먼 그들의 똥이 사방에 널려있다. 한 무리가 그곳에 둥지를 튼 것이 분명했다. 큰 일 났다. 이미 이곳저곳에서 십여 개의 가지가 부러진 것을 발견했다. 그 중에는 기둥 가지에 속하는 것도 있어 그 나무는 평생 제 역할을 다해낼지 확신할 수 없다.









 산이와 들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두 마리의 개를 밭 가운데 묶어 두는 일 뿐이었다. 뙤약볕에 그리 해놓고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생각 같아서는 개를 풀어 놓고 싶었으나 마을로 내려가 또 흑염소를 해칠까 염려되어 그럴 수도 없다. 최근 들은 바로는 요즘 멧돼지들은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 특별히 흥분이 될 만 한 원인이 없어도 사람을 위협하고 심지어는 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쇠몽둥이를 들고 자두를 따러 다니려니 실소가 난다. 작정하고 달려들면 도망가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나 위안삼아 그랬다. 멧돼지가 무작정 공격적이지는 않다는 사실 하나만 믿고 일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개 짖는 소리에 멧돼지의 접근이 뜸해졌다. 그러나 개들이 묶여 있다는 걸 인지하고 나면 언제 또 밭에서 분탕질을 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 불안했다.

 답답한 마음에 면사무소에 전화를 넣었다. 아직 포획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며 쓰고 난 현수막을 밭 주변에 걸면 괜찮을 거라고 직원이 말했다.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었다. 멧돼지는 철책으로 막으려 해도 잘 궁리하여 설치하지 않으면 타고 넘거나 무너트린다. 게다가 수천 평의 밭 주변을 현수막으로 둘러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마침 면사무소에 볼 일이 있어 간 김에 그런 말을 한 직원에게 다시는 현수막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 성정 사나운 농사꾼이었다면 멱살잡이 벌어질 일이라고 쏘아붙였다. 내친 김에 시청에 대책을 문의하였더니 크레졸, 나프탈렌 운운한다. 그런 약품이 효과 없다는 것은 농사꾼이라면 누구나 안다. 고작 고라니에게 효과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있을 뿐인 기피제이다. 더구나 멧돼지들은 크레졸을 둔 곳을 가로질러 우리 밭으로 들어왔다.

 들이는 종합적 대책이 알고 싶었다.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농작물 피해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점차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농사 못 짓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무언가 장기적으로 피해를 억제할 수단을 마련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들은 바로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포수를 동원한 포획이었다. 8월부터 실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개체수를 줄이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밭으로 내려오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사람들의 임산물 남획으로 산속에서 먹을 것이 찾기 어려워서 이고, 둘째는 말 그대로 농작물이 부드럽고 맛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생태환경의 지속적인 파괴로 생태계가 교란되어 특정 동물들, 멧돼지나 고라니 등이 비정상적으로 급증하였기 때문에 먹이의 절대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고려하여 지역의 생태현황을 면밀하게 지속적으로 관찰하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인간이 파괴한 생태계를 인위적으로라도 복원하자면 고도의 전문성이 담긴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야생동물에 의한 피해가 농사꾼의 손을 떠난 지 오래되었으나 당국의 대책은 포수에 의존한 합법적 살육이 거의 전부인 것 같아 또 답답하다. 자두나무가 부러져 나가는 것이 딱하고 마음 놓고 개울에서 미역을 감을 수도 없는 처지가 곤궁하다. 산이는 내내 고추밭, 콩밭, 깨밭 걱정에 좌불안석이다. 들이는 조금 남은 수확할 자두가 무사하기를 빌며 담배나 한 대 피운다.

 여름, 참 덥다.


꾀돌이

2010.08.04 00:51:30
*.151.245.114

멧돼지 농장이 되지는 말아야지요.....

저도 밭에 고라니가 매일 와서 심은 콩순을 뜯어먹어 스트레스 받다가, 결국은 콩을 뽑아버리고 들깨를 심었어요.

논에도 고라니가 매일 출몰하여 벼를 밟아 버려, 허수아비 설치, 약제살포, 줄설치등 갖가지 방법으로 고생하다가,

그리고 점멸기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7월 29일 면사무소에 전화하니 8월부터 포수를 가동하여 잡아준다고 하네요.

그래서 면장보고 우리논 근처에서 3마리만 잡아서 보여 주라고 하였죠.,그런데 아직....

농장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한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잡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계속 오죠.

전자 울타리가 좋긴하지만 가격도 비싸고 위험해서요.

멧돼지를 포획하는 방법을 강구해 보세요. (아님 내가 죽창들고 잡으러 갈까요)

조만간 맛있는 멧돼지 바베큐를 먹을수 있겠네요...후후후...

운영자

2010.08.04 23:13:35
*.211.220.189

바베큐는 뭔, 바베규...!

더운데 어찌 지내시는지. 여직 낚시 다니시나?

같이 함 갑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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