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들이잡전

최근 댓글

진바실 농사력


Follow ykwoo3 on Twitter

밭이나 갈자

덤바우잡설 조회 수 16504 추천 수 0 2012.06.05 08:14:33
 집요한 잠식, 벌레들의 계절이다.
 과수 농민들조차 6월이 오면 극심한 벌레들 탓에 진저리를 친다. 요즈음은 더 그렇다. 일기변화로 개화시기의 일교차가 너무 극심하여 상습적인 냉해로 착과율이 몇 해째 계속 낮아지고 있다. 최대 산지인 김천의 자두농사가 위기를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큰 판에 벌레마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과수에 해가 되는 벌레들은 무척 다양하다. 유리나방, 심식나방, 복숭아 순나방 등의 애벌레들이 대표적인데 그중 깻망아지라는 녀석은 몸집도 대형인데다 먹성도 대단하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거의 모든 나방의 애벌레들이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것 같다. 이밖에도 털이 부숭부숭한 송충이 종류도 있고, 송충이와 조금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이름도 알 수 없는 녀석은 아예 코를 처박고 어린 과실을 모조리 먹어치운다.



 그런데 벌레들의 가해의 정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과실에 조그만 흠 하나만 있어도 상품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과실이 다 익고 나서야 바늘구멍만 한 흠이 발견되고 거기서부터 무르기 시작하는 것을 볼 때면 과일 하나만큼의 허탈함이 툭 하고 떨어진다. 사람들은 해마다 수확량의 40%를 버리는 바에야 화학농약을 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효율이 높아질 수도 있겠으나 우리 부부의 평가는 좀 다르다. 요즘 화학농약이 무척 안전하다고는 하지만(실제로 독성이나 잔류양 등에서 보여주는 안전도는 대단히 신뢰할 만하다. 더구나 미생물을 활용하여 전혀 위험하지 않은 농약도 많다.) 밭 주변의 생태환경을 인위적으로 편협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여 해가 갈수록 충해 방제에 어려움이 가중될 수도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자두는 품종에 따라 수확시기가 달라 혼재되어 있는 나무들에 선택적 방제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확이 임박한 자두에 농약이 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궁극적으로 화학농약은 땅속의 미생물에게 독이 되어 장차 흙을 척박하게 만든다는 것은 차치하고 경제적 이유도 있다. 농약의 안정성을 강화하면서 그 가격의 인상폭이 매년 늘고 있다. 이는 당연히 생산비에 영향을 끼치고, 가격 결정을 어렵게 하는 주요인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화학농약과 비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면(유기농, 친환경 농약과 비료는 더 비싸다.)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장사’가 되기 십상이다.


 

 다행히 황토유황이 병충의 방제에 요긴하고, 제조한 미생물과 식초, 효소 등이 제법 역할을 한다. 그러나 방제의 조건은 까다롭다. 비교적 강력한 화학농약의 사용에서도 방제 적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관찰, 그 보다는 예찰이 매우 중요한데 해마다 나방의 교미 시기가 조금씩 다르고 우점 하는 나방의 종류를 눈으로 보아 알기 어렵다. 애벌레들을 나뭇잎이나 과실에서 이미 발견했다면 최적기는 놓친 셈이니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덤바우도 5년 이래 최악의 착과율을 보였다.  단 한 알의 자두도 아쉬운 판이다. 누렇게 말라 들어간 벌레에 씹힌 자리를 보자면 입맛이 쓰다. 방법은 하나,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들의 기승을 억제하는 수밖에 없다. 양파와 마늘, 그리고 애기똥풀, 고사리 등을 우린 물을 만들고, 난황유도 만들어 5~6일에 한 번씩 번갈아 치거나 섞어 치고 있다. 열흘에 한 번씩은 황토유황을 살포한다. (아는 사람을 알겠지만)약 치는 일이 여간 고되지 않아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결리는가 하면 펴고 구부릴 때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신다. 분무기를 들고 온 밭을 헤매는 일이 지긋지긋하다.

 한바탕 온 밭을 돌며 굿거리(?)를 하고 나서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막걸리를 마신다. 몸이 피곤하니 금세 불콰해진다. “농사, 이렇게 지어도 되는 거야?” 내가 안주 삼아 투덜대면 아내가 권주가를 부른다. “밭이나 빨리 갈아줘, 참깨 심게.” 허기는 그렇다. 진작부터가 소쩍새 울기 시작했고, 아카시는 이제 다 졌다. 밤꽃마저 비리한 냄새를 풍길 시절인 마당에 깨 심을 밭도 가다듬지 못했다. 벼룩이도 한철이라고 눈밭에서는 농사를 짓고 싶어도 못 짓는다. 벌레를 이길 수 없다손 쳐도 갈고 심는 거야 뉘 막을 소냐. 음주 관리기질 한다고 단속할 사람도 없으니 저문 밭에 나가 흙이나 뒤집자. 그러자.


자두나무의 새 둥지. 그래 무럭무럭 자라 벌레 다 잡아 먹어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5 덤바우잡설 해발 700m에 꽂은 귀농 깃발 file 들이 2012-12-10 18652
254 덤바우잡설 아내가 너무 많다 file 들이 2012-11-12 16251
253 농업인과의 대화 백업 농사꾼 file 들이 2012-10-12 11067
252 덤바우잡설 굽이굽이 한 고비 file 들이 2012-09-30 18557
251 덤바우잡설 컨닝이 필요한 농사 file 들이 2012-08-24 14817
250 덤바우잡설 고추가 비싼, 그 뻔한 이유들 들이 2012-08-11 14851
249 덤바우잡설 올 고추 품질은 좋겠네 file 들이 2012-08-07 14922
248 농사일보 자두타령 file 들이 2012-07-02 16237
247 덤바우잡설 복불복 file [2] 들이 2012-07-02 19405
246 덤바우잡설 악기를 든 사람들 file [2] 들이 2012-06-18 19902
» 덤바우잡설 밭이나 갈자 file 들이 2012-06-05 16504
244 덤바우잡설 여름의 길목에 피는 꽃들 file 들이 2012-05-21 16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