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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가 비싼, 그 뻔한 이유들

덤바우잡설 조회 수 14851 추천 수 0 2012.08.11 13:11:29
 뜸들일 것 없이 결론을 알려드린다. 고추 값이 비싸지는 근본 이유는 생산량의 급감이다. 너무 뻔한가? 뻔한 얘기들의 행진이다. 뻔한데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딜레마에 대한 글이다.

땅이 문제다

 지난 해, 그러니까 2011년 후기 고추가격이 급등하였다. 원인은 전국적으로 몰아닥친 탄저병 때문이었다. 고추 농사꾼이 가장 두려워하는 곰팡이 병이다. 고추농사 한두 해 짓는 것도 아닌데 왜 탄저병에 속수무책이었을까? 고온다습한 날씨가 너무 길게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방제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래도 당한다. 왤까? 전반적으로 토양조건이 악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흙 고유의 건강성을 상실한 땅이 많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토양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너무 편협하거나 그 개체 수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물론 무분별한 화학농법이 그 원흉이다. 그렇다면 화학농법을 배척하고 친환경농업을 하면 이러한 병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아니다. 건전한 화학농법으로도 땅의 건강을 담보할 수 있다. 농법이 문제가 아니라 재배작물 각각이 가지고 있는 자발성을 최대화하는 방식만이 병과 충에 대한 면역력을 증강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말만 쉽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지난한)땅을 살리는 일이다.
 어쨌거나 지난 해 고추 흉작으로 인한 가격 상승의 이면에는 농토의 고갈 현상이라는 본질적이고도 난해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농사의 반은 하늘이 짓는다

 올해에도 벌써부터 고추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장마 이래 고온다습한 날씨가 거의 없어 탄저병의 습격도 없었는데도 그렇다. 다들 알다시피 다습하지 않은 대신 폭염이 가뭄을 동반하여 덮쳤다. 농사꾼으로서는 거의 불가항력의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제 아무리 스프링클러를 돌려 물을 댄다 해도 어느 정도의 생산 감소는 각오해야 한다. 물을 댈 형편이 안 되는 밭이라면 그저 살아남아 세 살 박이 아이 고추만 한 고추라도 달리기를 빌 밖에…….
 그래서 올 고추가격은 지난해보다 더 오를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고추를 심는 시기인 4월 말,  5월 초부터 장장 한 달간 일교차가 너무 극심했다. 고추는 하루 최저기온이 15도는 되어야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앞의 기간 동안의 최저기온이 이보다 훨씬 낮은 경우가 많았다. 심한 경우 밭에 심자마자 지나친 저온 현상으로 평생에 걸쳐 극복하지 못할 장애를 입은 고추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고 들었다. 더 심한 경우는 모종 시절 아예 얼어 죽은 놈들이 부지기수여서 고추농사를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이들도 무척 많다고 한다.
 지난해와 달리 수확 초기부터 고전인 것이다. 생산 감소는 당연히 가격상승을 부른다. 일정한 시세가 조성되지도 않았는데도 인터넷에서 근당 2만 원 이상으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부들에게는 민망하지만, 아마도 작년보다 비싼 고춧가루를 먹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예상이 틀리기를, 고추농사 짓는 내가 바란다. 악조건에서 농사를 잘 지을 수 없는, 문제 해결 능력이 박약한 농사 초보자가 바로 나이기에, 내 고추농사를 제발 그르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병상련으로 그렇다.

은퇴가 봉쇄된 직장

 댁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연세를 한 번 떠올려보자. 결혼해서 연중 한 번은 고춧가루를 비교적 많이 사고, 김장도 담그는 그런 가정을 꾸린 연배라면 아버지의 연세가 어떠신가? 내 경우(50대)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여든을 넘겼겠다. 아직 결혼 생각이 꿈에도 없는 20대의 나이라면 아마도 할아버지의 연령이 우리 아버지쯤 되겠다. 시선을 옮겨 내가 농사짓는 진바실 마을의 어르신들의 평균 연세는 어떨까? (50~60대를 빼면) 팔십 대 초반이다. 50~60대를 넣어도 몇 년 내려가지 않는다. 이들 중 고추농사를 짓는 분들은? 딱 한 분 계신다. 물론 우리 마을의 경우다. 왜 그리 적으냐고? 힘드니까.
 고추 농사는 재배기간이 최소 5월에서 10월까지로 무척 길다. 할 일도 많다. 병도 탈도 많다. 수확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뿐더러 건조까지 해야 한다. 손이 많이 가고 일손도 많이 필요하다. 다른 단기작물에 비교해서 할 일이 거의 종합선물세트로 많다. 노인들에게는 벅찬 농사라는 말이다.
 자, 시야를 넓혀보자. 전국 상황으로 가자는 말이다. 농업통계 중에 그래도 거의 맞는 인구통계를 들춰보자. 실제로는 거기에 못 미치지만 전국의 농민 인구를 3백만이라고 할 때, 60세 이상의 농민이 44.7%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 통계에는 0~19세의 아이들까지 12.8%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결코 농사를 지을 것 같지 않은 20대와 30대의 대부분을 걸러내고 나면 어떨까? 주먹구구식 계산에 의하면, 60세 이상의 노인농민의 비중은 사실상 70%에 육박한다. 이 통계는 2010년에 작성된 것이고 2009년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므로 통계대상 중에 많은 이들이 그만큼 더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노령화가 더 진전되었다는 말이다. 역시 같은 해에 나온 통계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50세 이상의 농업인구는 2백만 명에서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20~49세 사이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09년에는 7십5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농업으로의 유입은 없고 유출만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이직이 불가능한 연령대만이 농사꾼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며, 농업이라는 산업의 노후화가 심각하다 못해 거의 막장에 이르렀다는 증거다.
 노인농민들 대부분이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농업 교사인 것을 농사를 지으며 절감한다. 그러나 코치는 코치일 뿐, 현역 선수를 대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코치나 감독으로 나서야 마땅할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짓는 농사, 그리고 농업이다.
 고로 고추재배처럼 힘든 농사는 안 하거나 못한다.

일꾼이 적으니 소출도……

 고추 생산량의 감소는 지극히 당연하게도 재배면적의 축소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농지감소가 재배 면적 축소의 주된 이유일까? 미안하게도 아니다. 경지는 그 절대량이 감소하는 데도 농사지을 땅은 널려있다. 내가 농사짓는 마을에도 몇 년째 노는 땅, 이른바 푸서리가 지천이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 증대라는 옛 새마을 구호가 무색하다. 사람,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고추 주요산지 재배면적은 2006년 53,097ha이던 것이 2011년에는 42,574ha로 줄었다. 거의 1만ha가 줄어들었다. 생산량도 116,914톤에서 77,110톤으로 적어졌다. 2007년을 제외하고 이런 감소 추세는 뚜렷하다. 2011년 고추의 총 소비량은 약 18만5천 톤이었다고 한다. 국내 생산량이 총 소비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의 대부분은 수입으로 해결했다. 생산량이 반짝 증가하였던 2007년에도 2011년 소비량만큼 생산하지 못했다. 2006년에서 2010년까지 5년간 가격이 대체로 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결론은 있어도 해답은 없다

 사실 우리나라의 쌀을 제외한 주요곡물의 식량 자급률이 5%에도 미치지 않는 형편에서 고추를 논하는 것은 어쩌면 중언부언이고 동어반복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추의 경우 가계 소비에서 소비자들의 국산 선호도는 거의 100%에 달한다. 우리 고추의 품질과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입고추에 대한 불신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고추는 이미 재배기피 작물이다. 작기가 너무 길고 수확에서 건조까지 할 일이 너무 많으며 봄에서 가을까지 온갖 병충해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농민의  70% 이상이 60대 중후반 이상임을 상기해야 한다. 이 문제의 책임이 주로 농민에게 있는가를 따지기 이전에 과연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뻘 되는 이들에게 농민의 의무와 책무를 눈 부라리고 외칠 수 있을까? 이미 말 했듯이 그저 쉬거나 코치나 감독을 해야 할 이들이 현역에서 뛰고 있다. 뻔한 결론, 노령화다. 새로운 진입이 없어 공동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농촌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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