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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닝이 필요한 농사

덤바우잡설 조회 수 14816 추천 수 0 2012.08.24 15:02:53
五時見生而樹生,見死而穫死. 天下時,地生財,不與民謀.
         - 여씨춘추, 士容論第六,凡六篇,卷第二十六四曰任地

 농사에서 씨 뿌림(또는 모종 심기) 하는 날을 잡는 일은 무척 까다롭다. 농사꾼은 언제나 봄 서리와 가을 서리 사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을 두고 파종과 수확에서 타이밍 싸움을 벌인다. 심는 작물의 특성에 맞게 가장 좋은 생육 환경과 기간을 제공해 풍작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상은 늘 천변만화도 모자라 이상기후로 번번이 그 기대를 배신(?) 한다. 저온과 고온 그리고 가뭄과 비의 틈바구니에 서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몰라 차라리 미친 춤을 추고 싶을 때가 허다하다.

 “아카시가 필 때가 좋지요. 뻐꾸기가 울기 시작해도 되고요.”
 여러 해전 참깨를 언제쯤 심으면 좋겠냐고 장모님께 여쭈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옳다고 치면 이보다 더 좋은 지표가 없겠다 싶었다. 아카시라면 고개만 들면 지천이고, 뻐꾸기도 푸름이 그윽한 때가 오면 문득 긴 공명으로 울어주는 덤바우다. 날짜가 같지 않더라도 이 땅 어딘들 아카시가 피면, 뻐꾸기가 울면 참깨를 심으면 된다. 기가 막힌 해법 아닌가? 그런 장모님의 말씀이 역사 깊은 식물계절론의 한 자락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인류가 농경을 해온 유구한 세월 내내 날씨는 최대의 난적이었을 것이다. 기상의 대격변이야 그렇다 쳐도 해마다 조금씩 다른 사소한 변화조차도 풍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농사이고 보면, 어떤 예측의 기법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에 대한 해답이 B.C로 연대가 표시되는 까마득히 먼 옛날의 책에 쓰여 있다.

 “五時見生而樹生,見死而穫死.”(계절마다 살아나는 것을 보아 살릴 것을 심고, 죽는 것을 보며 죽은 것을 거둔다.)라는 구절이 중국의 고전, 여씨춘추에 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심지 않은 산과 들의 풀과 나무, 동물을 관찰하여 작물을 심을 때와 거둘 때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긴 세월 이를 전천후의 풀달력(草曆)으로 삼아 24절기가 예측하지 못 하는 기상이나 풍토적 특성을 극복해왔다. 자연에서 자생하는 동식물의 지혜를 빌어 농사를 짓는 자연친화, 자연순응의 농사미학이라 하겠다.


어떤 이가 말하길 예전 고추는 줄의 띠우지 않아도 곧게 잘 자랐는데, 과보호가 심해 요즘 고추는 받쳐 주지 않으면 제대로 서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고추는 예전 고추가 아니다.
교잡이라는 방법으로 잡종교배를 수도 없이 겪은 고추다. 과실이 더 크게 그리고 더 많이 달리도록 개량된 종자다. 더구나 요즘 고추는 대부분 종자 번식을 하지 못 한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복잡한 교배로 인해 부모세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사라져 생식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F1종자다.

 이미 길들여진 농작물들은 자생력이 거의 없다. 풀과 경쟁하게 두면 거의 대부분 지고 만다. 이것은 인간이 농사를 짓는 한 안고 가야하는 숙명이다. 화학 농약과 비료의 사용이 땅의 황폐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래서 농민들은 땅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효과에 중독반응마저 보이던  질소숭배도 농업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재배환경의 개선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농작물의 자발성이다. 풀은 아니되 풀과 다르지 않은 의지가 농작물에도 내재되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자생력은 아니되 자발성은 생명현상으로서 엄연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사람의 인위적 관리와 작물의 자율성이 어떤 균형을 갖추어야 하는가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자연계의 생태를 엿보는 일이다. 풀은 아니되 풀과 닮은 농작물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훌륭한 수단이다. 같을 수는 없더라도 닮을 수는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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