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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풀에게서 배운다

덤바우잡설 조회 수 12653 추천 수 0 2012.04.02 19:44:27
 우리 부부가 경작하는 덤바우에 오는 봄은 늘 더디다. 해발 오백여 미터의 높이에는 오늘도 여전히 겨울이 서려있어 밤에는 영하 칠, 팔도까지 떨어진다. 겨울과 봄이 밤과 낮을 딱 반분한 형국이지만, 고집스레 낮에도 웅크린 겨울이 있는가 하면 밤에 몰래 숨어든 봄도 있게 마련이어서 계절을 놓고 시비를 가리기 쉽지 않다. 이런 전환기의 혼란 중에 정세 판단을 잘 못 하여 성급히 움을 틔운 꽃눈이나 풀잎이 가엽게도 찬 밤을 이겨내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풀과 나무는 숨죽이며 겨울의 마지막 고비를 끝내 인내한다. 예외적으로 처세의 운을 타고난 녀석들은 밤에도 식지 않는 손바닥만 한 봄 자락으로 제 발등을 데우며 봄을 선도하기도 한다. 유난히 볕 바른 곳이 그렇다.

 덤바우에도 그런 곳이 있어 며칠 째 기웃거린 끝에 마침내 보았다. 이윽고 봄이라는 전갈은 해마다 산괴불주머니 꽃을 통해 온다. 그 꽃의 모양이 옛날 남녀 아이들의 옷고름에 달았던 노리개, 괴불을 닮았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 꽃을 볼 때마다 어린 가슴팍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꽃과 어우러진 붉은 대궁 또한 선연하여 생명의 꿋꿋함이 전해진다.

 제 때를 가늠할 줄 아는 산과 들의 나무와 풀들이기에 사람의 지혜가 담긴 절기보다 늘 바르다. 그래서다. 그들의 생동에 맞추어 농작물을 심고 거두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이를테면 산괴불주머니가 한두 포기 꽃을 틔우기 시작하면 우리는 감자를 심는다. 물론 이는 덤바우에서 안성맞춤일 뿐 다른 곳은 다른 지표가 있겠다. 사실 이른 봄 작물 심기는 그 종류에 따라 파종이나 모종심기에 매우 조심스럽다. 된서리 한 번에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 환경의 대체적인 변화를 눈으로 어림짐작하는 일도 경륜이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일상화된 기상이변 때문에 농사일에 맞출 장단이 엇박자일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무와 풀에게서 배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정세 판단에 착오를 일으킨 매화꽃이다. 냉해를 이기고 열매를 달 수 있을지...

달래와 마늘, 잎이 가늘고 좁아 추위를 잘 이긴다

아슬아슬하게 제 때의 초입에 핀 냉이꽃과 꽃다지



산괴불주머니

산괴불주머니의 신호에 맞추어 감자를 심는 아내

먼 수를 내다보시며 장차 피어날 꽃을 위해 꽃밭을 가다듬으시는 장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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