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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연한 꽃, 할미꽃

덤바우잡설 조회 수 15861 추천 수 0 2010.04.05 15:41:32
찬연한 꽃, 할미꽃

 할미꽃은 유난히 선연한 붉은 빛이다. 줄기와 꽃받침에 워낙 흰 솜털이 많아 그리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그래서일 테지만, 이즈음 사월 초에 피어나는 할미꽃을 보자면 마을 어르신들을 떠올리게 된다. 대부분 연세를 넘어 춘추라 이름 할 세월을 사신 분들이다. 어느 분하나 허리에 무릎에, 속병까지 온전히 성한 몸을 가지신 분이 없다. 그건 단순히 병이 아니라 긴 세파를 이겨내고 삶을 지속하며 얻은 상처고,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완강한 옹이이고, 스스로에게 바친 훈장이다.



 유난히 선연한 할미꽃 속살은 또 그들의 붉은 마음을 닮았다. 느릿하고 힘겨워 보이지만, 어르신들의 노동량은 가히 엄청나다. 신 새벽에서 땅거미가 질 무렵까지 하루를 거르지 않는 밭일은 어떤 막일에 비겨도 덜한 노동이 아니다. 부지런함이라기보다는 천성에 가까운 수고에는 감정도 흔들림도, 그 흔한 어깃장도 없다. 따라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공부를 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기술도 아니다. 그 숨결에는 삶을 건 생활의 끈질긴 자기 확신이 강고하다. 그를 보고 미욱하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농업에서 영리한 기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 낮다. 전문성으로 평가하기에는 잣대가 너무 짧다. 경제성으로 계상하기에는 농부라는 업이 너무 비경제적이다. 차라리 삶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그런 우직한 뭉뚱그림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모호하게 부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 꽃, 진바실 어르신들을 빼다 박은 꽃, 할미꽃이 부스러져가는 바위틈에서 찬연하게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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