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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든 꽃의 표정

덤바우잡설 조회 수 16641 추천 수 0 2010.04.12 12:40:32
꽃을 든 꽃의 표정

 아내의 조카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둘이 있을 때, 막걸리라도 한 잔 하면, 돌아가며 세 조카들 얘기를 듣거나 말거나 혼잣말처럼 한다. 거기에는 걱정도 있고, 기대도 있고, 바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세심한 살핌에서 오는 진지함이 가득 흐른다. 먼 훗날 진바실의 덤바우 땅이 그들의 삶에 한 부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들의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 소중한 터전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도 강하다.

 “그건 알 수 없지, 뭐. 내 생각일 뿐이지.”

 그런 아내의 습관 때문인지 우리는 나무를 한 그루 밭에다 옮겨 심어도 10년 보다는 50년의 미래를 계산하며 심는다. 조카들이 지금의 우리 나이가 되었을 때에 보여줄 밭의 모양새를 늘 염두에 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밭의 경영에 대해서도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려고 애쓰기도 한다. 물론, 농사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 확신할 계획이 서는 것은 아니라 해도 틈만 나면 그 일을 궁리한다.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지속가능한 농사. 그리고 안정적 수익을 얻는 기반을 갖추자면 지금껏 밭에서 보낸 세월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하고도 제자리를 맴돌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필연인지 조카들의 아버지들, 처남들이 의욕을 가지고 단순히 우리 부부를 돕는 선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모색을 밭에서 함께 해보려 애쓰고 있다. 아직은 팀워크보다는 팀플레이에 의존하는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일의 배분과 통합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지난 일요일 조카들 중의 막내, 지안이가 엄마 손을 잡고 밭에 왔다. 아빠, 작은 처남이 주변 산 지천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진달래를 산 괴불주머니와 함께 묶어 아이에게 주자 예쁘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보던 아내가 지나가듯 말했다. 저 아이에게 이 밭이 그저 땅이 아니라 제 부모와 고모가 함께 나누는 생활의 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이미 그러할 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아내 말대로 그건 알 수 없다. 훗날 이 덤바우 땅이 조카들에게 고되고 전망 불투명한 노동의 자리여서 꺼려지거나 아예 잊혀버릴 수도 있다. 부모 세대에 대한 소중한 추억의 터가 될지도 모르고, 우리의 기대와 능력을 넘어 더 대단한 무엇을 이루려는 꿈의 공장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아이, 지안이의 꽃을 든 표정에서는 아무 것도 읽을 수 없다. 아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이 저 봄꽃들처럼 화려할지언정 확신은 주지 않는 어지러운 향기만 가득할 뿐이다. 아이의 눈 속에 핀 꽃은, 보면 볼수록 일체의 가능성이 뿜어내는 현란한 기미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거기에 비추는 아비 세대의 기대와 소망, 바람, 이런 것들이 오히려 초라하다. 꽃 앞에서는 그저 겸허할 일이다.












嶺南 프리맨

2010.04.23 11:41:57
*.103.89.185

지안이가 많이 의젓해진 느낌^^

애가 남자 같은 모습이 보일때 바로 동생을 만들면 백발 백중 옥동자를 볼긴데..

 

이형도 하나 맹글어 보슈~~~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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