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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눈, 눈가리 - 2010년 4월 19일

농사일보 조회 수 19374 추천 수 0 2010.04.20 10:51:17
#2010년 4월 19일

4월의 눈, 눈가리

 처음으로 올랐던 날부터 눈가리는 산이와 들이에게 특별한 곳이 되었다. 고원이라기에는 규모가 작으나 해발 팔 백여 미터에 펼쳐진 완만한 구릉이 장관인 곳이다. 김천의 감천으로 합류하는 남천의 발원지답게 구릉 곳곳에는 물이 풍성하여 습지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살며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데, 집터와 긴 돌담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땅이 기름지고, 물도 충분하여 지금이라도 잡목을 베어내고 땅을 일구면 훌륭한 밭이 될 만한 곳이 많다.

 “우리, 여기에 움집 짓고 화전민이 되어볼까?”

 정말 그러고 싶은 곳이다.



 4월 15일, 바쁜 일 다 밀쳐두고 산이와 함께 눈가리에 올랐다. 찌뿌듯한 하늘에서 곧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날씨였으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음만 먹으면 지척인 곳인데도 눈가리에 마지막으로 간 것이 사오 개월 전이었다. 발부리에 들꽃이 걸려 시간을 지체하기도 하면서 그 초입에 도착하자 널찍한 소나무 관문이 훤하다. 문득 한 무리의 화적떼가 말을 몰고 달려 나올 것 같다. 임꺽정의 청석골 대문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나지막한 돌담만 덩그런 산채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이 많이 내리고, 또 많이 쌓여 잘 녹지 않아 붙여졌다는 눈가리, 그 진면목을 춘 사월에 보는 행운이다.



 천여 평, 머위들판에 쪼그리고 앉아 산이와 들이는 막걸리를 두어 잔씩 나누어 마셨다. 눈발이 제법 굵어져 판판한 머위 잎에 소복이 쌓였다. 기념 삼아 머위를 뜯었다. 그 사이에 함박눈이 되었고, 바람도 드세었다. 그렇다 해도 (염속산)정상에도 한 번 오르고 싶었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 내려가기로 했다.





 “다음엔 처남들 하고 꼭 오자.”

 그들과 함께 야영하며 밤새 술 마시고 싶은 곳, 들이에게 눈가리는 그런 곳이다.





덤바우 인프라

 처남들 덕에 밭의 기반 시설이 확충되고 있다. 그 중 뼈대가 되는 작업, 비닐하우스 만들기가 1박 2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농민치고 비닐하우스 한두 동 안 가진 이들은 없겠으나 우리는 있던 것을 쓰는 형편이었다.

 새로 땅을 정하고 자재를 구입하고 제작하는 모든 일을 처남들이 도맡았다. 들이 깜냥으로는 거들 일도 없다. 힘도 기술도 요령도 부득인 까닭에 뒤나 졸졸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그걸 두고 산이가 비웃기도 하지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 또한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일인지 잘 몰라서 그럴 거다. 그러는 것도 딴에는 전문성을 요하는 작업이라는 말이다.

 장모님을 위시한 처갓집 식구들은 모두 ‘꼼꼼쟁이’들이다. 무슨 일이든 대충 하는 법이 없다. 일을 했다 하면 겨냥한 대로 마쳐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이다. 들이의 습성에 비추어 그 모습은 거의 경이로움에 가까운 일 맵시다. 그러는 데에도 단점은 없지 않겠으나 배워야 할 점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집중력이 서려있다.                     

 누구나 한다고 꼭 쉬운 일은 아니었다. 뼈대가 될 파이프를 박는 일부터 그랬다. 오십 여개가 넘는 구멍을 사십 여 센티미터 깊이로 파는 일부터 그랬다. 무거운 해머로 몇 번씩 내리치자면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게 기초 작업을 마치자 이미 해가 기울었다. 산이 눈치를 보아가며 술을 홀짝이다가 잠들었다.






      
 아침이 밝자 전날 도착한 파이프를 휘어주기 위해 멀리 선산에서 자재상을 하는 사장이 ‘밴딩기’를 싣고 왔다. 파이프를 바르게, 일관되게 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허허’ 웃는 게 인상적인 사장은 다소간의 오차는 제작하며 맞추면 대과가 없다며 일을 서둔다.







 “야, 이거 기계가 불량이네!”

 일이 반쯤 진행되던 중에 큰 처남이 외쳤다. 그러며 기계의 유격상태와 간격의 불안정함을 조목조목 따져 그 불량을 증명했다.

 “허허, 허허. 그러네요. 허허.”

 ‘허허 사장’이 담배를 피워 물며 수긍한다. 그러며 덧붙인다.

 “뭐, 문제는 없을 겁니다, 허허.”













 나중에 비닐하우스 골조를 다 세우고 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큰 문제는 없었으나 그 모양새가 미끈하지는 않았고, 가로로 대는 파이프를 조금 잘라내야 하는 부실이 뒤따랐다. 문제가 없는 것 하고 제대로 잘 만드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라는 괜한 상념이 드는 대목이었다.

 끝까지 허허 웃던 사장이 가고 나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 사이 산이는 밥집 아줌마도 되고, 주모도 되어가며 뒤치다꺼리를 했고, 밭에 토란을 심는 일도 했다. 내처 비닐까지 씌우는 일도 마치려고 했으나 시간이 모자라 다른 날을 잡기로 하고, 개집을 이전하는 것으로 하루 작업을 마쳤다. 객관적으로는 힘과 기술을 총동원한 두 처남이 가장 고되었겠으나 앞뒤 생각 없이 졸졸 따라다닌 들이 또한 주관적 고됨에 파김치가 되었다.



 밭에서 나오며 들이는 짬이 나지 않아 자두나무와 고추밭에 부엽토 액비를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틀 후에 들어오면 그 일부터 해야겠다고 중얼거리자 산이가 말했다.

 “어휴, 농부 났네, 농부. 입으로 했으면 진작 천석꾼 되었겠네.”

 맞는 말이다. 모든 일은 몸이 한다. 그래서 온 몸의 근육이 이처럼 아프고, 뼈가 쑤시겠다.

嶺南 프리맨

2010.04.23 11:30:30
*.103.89.185

역쉬~~쪽수가 많아야 일이 수월해 지는거야..^^

난 맨날 혼자서 뒷치닥 거리를 하다보니 제대로 모양은 안나지만

일사천리 빨리 끝내야 겠다는 생각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입장이 초래됩니다.

 

가서 도와주지도 못하고 마음만 앞서갑니다.

두 동생들이 그래도 제 하우스를 박아봐서 제대로 배워 실행에 옮겼군요,

수고많이 했데이...갱상상도 사투리로...아이고~~오...욕봤데이..ㅋㅋㅋ

 

이형...동감합니다.^^

저도 혼자 할려니 온몸이 다 아푸고 쑤셔서

이게...뭔지랄인지..?  혼자서 괜히 시작해가지고 난리법석인지....-.,-;;;

 

이제 씨뿌리고 관리 잘하여 좋은 결실만 기다리면 될겁니다.

두처남이 있어 좋겠습니다.

 

병훈아~~

닭장도 하나 맹그러놔라~~

삥알 새낀 형아가 공급해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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