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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3일

희망이 아주 많이 섞인 관측

 예년에 비해 비가 참 많은 봄이다. 고추 심고 나서는 늘 가뭄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습해를 걱정해야할 지경이다. 봄이 이르면 일러서, 늦으면 늦어서, 기온이 높으면 또 그래서 반대여도 마찬가지이고, 비가 내려도 안 와도……. 말해봐야 무엇 하랴.

 올 이른 봄에 닥친 이상 저온현상과 잦은 비로 전국의 농민들은 농사의 기지개도 켜기 전에 말 그대로 된서리를 맞았다. 시설 재배 작물들은 일제히 시르죽어 내다팔 물량도 상품성도 엉망이 되고 말았다. 과수재배 농가들은 배, 자두 할 것 없이 꽃눈이 아예 얼어버리거나 겨우 핀 꽃은 찬바람에 누렇게 시들고 말았다. 겨우 살아남은 꽃에는 낮은 기온으로 벌들조차 찾지 않아 착과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떨어졌다. 피해를 직접 눈으로 볼 양으로 남의 자두 밭을 찾았던 산이와 들이는 그만 입이 딱 벌어졌다. 어떤 나무에는 자두가 고작 두세 개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들이는 행여 밭주인이 보기라도 할까 민망해 산이의 손을 끌며 총총히 자두 밭을 빠져 나왔다. 정확한 집계는 아니겠으나 들리는 말에 따르면 올 김천 자두 수확량은 예년의 30%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피해가 이 정도라면 살아남은 자두가 고스란히 상품이 된다 해도 한 해 농사는 이미 파탄이 난 셈이다. 더욱이 배의 경우는 자두보다 더 심해 예상 수확량을 따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한다.

 산이와 들이의 자두 밭은 다른 재배농가에 비해 상당한 고지에 있다. 그래서 피해가 극심한 매실과는 달리 자두는 꽃 피는 시기가 좀 늦어 매년 조금씩 발생하는 냉해를 피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다른 지역과 차이가 크지 않았다.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으나 피해율이 70%에 달한다. 김천의 평균 착과율에 겨우 미치는 것이다. 꽃이 열매로 바뀌었다고 모두 잘 자라 훌륭한 과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자두나무를 바라보면 그저 난감할 따름이다.

 “솎아낼 것도 없네. 적과할 고생은 면했네, 그치?”

 산이의 뜻밖의 말이었다. 초봄, 저녁 날씨가 시집갈 처녀처럼 말끔하고 화사하면 여지없이 서리 걱정에 어쩔 줄 모르던 산이가 이렇게 의연하게 말하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 지나친 평정심 또는 여유가 불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두농사는 우리의 주력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수익도 대부분 거기서 나온다. 하늘에 대고 삿대질이라도 하는 게 옳은 상황인 것이다. 면사무소의 피해조사에서 우리 밭을 빼놓은 것이나 부랴부랴 따로 신고했는데도 오겠다는 말과는 달리 여직 나와 보지 않는 것에도 산이는 별로 흥분하지 않았다. 원체 천하태평인 들이가 올 자두 시세는 좋지 않겠냐며 달린 거 잘 추스르면, 그럭저럭 아니겠냐고 조심스레 운을 떼어도 산이는 시큰둥이다. 오히려 이즈음의 병충해 방제를 위해 살포한 은행잎 녹즙과 제독 유황의 효과에 관심이 더 크다. 딴에는 그렇다. 자두나무가 다 얼어 죽은 것도 아니고 농사 또한 한두 해 짓고 말 게 아니라면, 산이의 지긋한 태도가 가히 옳음에는 틀림없다.

 그렇다 해도 가물에 콩 나듯 매달린 자두를 눈으로 더듬을라치면 과녁 없는 화가 치민다. 한 겨울 바람 맞아가며 가지치기를 하고, 무거운 수레를 밀어가며 거름도 주고, 비료도 준 공이 모조리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또 그렇다 해도 파릇하게 나던 것들이 금세 넓적한 잎으로 가지를 뒤덮은 자두나무 잎이 괜히 얄미웠으나 한 나무 한 나무 꼼꼼히 살펴보았다. 기대했던 천연농약이 효과가 있었다. 진딧물에 대해서는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병충의 징후도 없다. 일찌감치 친 석회유황합제의 효과가 여실하여 과실이나 잎에 병도 거의 없다. 앞으로가 문제이기는 하나 병충에 대해서는 기선을 제압했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우리에게 주도권이 있어 보였다.

 “있잖아. 지난해 벌레 먹어 팔지 못한 거 40%를 감안하면, 작년 수준을 상회할 수도 있겠어. 잘 하면…….”

 희망이 많이 섞인 관측이기는 하다. 이러저러한 변수를 모조리 우리에게 유리하게 계산하고, 막연한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고집하여 두들겨 맞추고, 자의적 해석을 마구 내리면 희망이 아주 많이 섞인 관측이 전망으로 바뀌고, 현실감마저 느껴진다.

 살며 느끼는 것이다. 궂은 일만 느닷없이 오는 것이 아니더라. 그저 하던 대로 하다 보면, 좋은 일 역시 도적처럼 모르는 사이 다녀가더라. 그러더라.


jinbarsil

2010.05.30 14:32:24
*.151.30.244

생각 했던 것보다 냉해 피해가 심하군요..

저희 부모님도 아무리 흉년이 지더라도 불평 한 번 안하시고 꿋꿋하게 일 하시는 모습 보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암튼 너무 상심 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들이

2010.05.31 14:25:50
*.211.220.189

마을 어르신들의 꿋꿋함이야 시리도록 보고 있습니다. 단숨에 배울 수 없는 뿌리 깊은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또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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